북한이 설계도를 해킹한 것으로 추정되는 KF-21 전투기의 시제1호기 최종조립 모습./방위사업청

북한이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해킹 배후에 북측이 있다고 본 남한 정보당국의 추정을 정면 반박했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2일 ‘고질적 버릇, 상투적 수법’ 논평에서 “최근 남조선에서 이른바 북 해킹 공격설을 대대적으로 유포시키며 반공화국 대결 소동에 열을 올리는 자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들의 불찰과 저열한 기술로 인해 해킹을 당했으면 저들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지 생뚱 같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대상과 억지로 연결하며 마치 굉장한 것이라도 밝혀낸 것처럼 들까부는 그 자체가 어리석고 너절함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각인시켜줄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적반하장식 주장이 황당하기도 하지만, 일부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바로 “저들의 불찰과 저열한 기술로 인해 해킹을 당했으면 저들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지”라고 한 부분이다. 적어도 그 말만큼은 맞다.

과거에도 중요 기관이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뚫린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의 비아냥처럼 공격당한 남측 방산업체나 정부 부처, 그리고 정보 보호에 책임있는 관련 기관의 불찰과 안이한 생각에 의해서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16년 9월 북한군에 의해 남북간 ‘사이버 휴전선’이 22일간이나 무방비로 뚫렸던 사건이다. 북한 해커들은 한국군 국방망(내부 인터넷)을 ‘놀이터’ 삼아 아무 때나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국방망이 인터넷에 연결된 ‘망혼용’ 상태를 2년 동안 몰랐던 탓이었다. 당시 국방정보본부와 국군기무사령부,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해킹을 막아야 할 조직들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국방망 해킹으로 빠져나간 자료만 235기가바이트나 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국방부는 “해킹으로 유출된 자료는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우겼다.

앞서 북한은 2016년 4월과 8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잠수함 장보고III와 이지스함 율곡이이함, 차기 호위함 울산급 배치-II, 수상함구조함 통영함 등의 설계도, 건조기술 자료, 무기체계 자료 등 60여건의 군사기밀을 절취했다. 전투체계 개발 로드맵과 관련한 프로그램의 알고리즘 등이 유출됐다는 것은 무기체계 특성과 작전반경 등이 그대로 노출됐음을 의미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에는 해킹한 3000t급 장보고Ⅲ의 ‘콜드론치(Cold Launch)’ 기술이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번에는 정부가 비밀리에 연구 중인 원자력추진 잠수함용 소형 원자로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국산 전투기 KF-21을 개발하는 KAI가 털렸다. KAI가 해킹당한 데는 보안감사를 책임지는 국군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 책임도 적지 않다.

문제는 해킹 피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해커는 가장 중요한 A급 자료를 훔쳐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다른 B급 자료의 해킹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아예 침입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수법도 있다.

해킹 피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커가 속한 조직의 컴퓨터 시스텀에 들어가 도난당한 ‘장물’(자료)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해킹당한 자료를 찾았다고 해도 사이버 세계에서는 회수가 불가능하다. 단지 도난당한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설사 도난당한 자료를 확인했다고 해서 기밀 자료를 빼내간 해커조직에게 “도둑놈!”이라고 따질 수도 없다. 이쪽도 상대방을 해킹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버전’의 특성이다. 그런 면에서 해킹당한 사실을 떠들어대는 그 자체가 어리석고 너절한 것이라는 북한의 비아냥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당한 놈’이 ‘멍청한 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이버 세계에서는 ‘털리지’ 않는 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