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북한 공작원의 지시로 농협과 국가정보원 등의 전산망 해킹을 시도했던 일당 5명의 배후는 2010년 ‘흑금성 사건’에도 등장했던 리호남(68)이었던 것으로 3일 전해졌다.

리호남은 1990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에서 근무하면서 1998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는 인물이다. 리호남은 이후 북한 대남 공작기구인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이자 ‘경제 일꾼’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흑금성 사건’은 199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군인 출신 안기부 대북 공작원 박채서(암호명 흑금성)씨가 지난 2003~2005년 국내 군사 기밀과 탈북자 동향 등을 리호남에게 넘기다가 공안 당국에 적발돼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된 사건을 말한다. 2005년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출연한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는 ‘리호남-흑금성’ 라인이 성사시킨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06년 10월 베이징에서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인물이기도 하다. 과거 안기부가 1997년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벌였다는 ‘총풍’ ‘북풍’ 사건에도 리호남이 등장한다. 리호남과 흑금성의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 ‘공작’이 2018년 개봉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최창민)는 리호남의 지령으로 농협 전산망 해킹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최근 해커 A씨 등 5명을 기소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입수한 이들의 공소장에 따르면, A씨 등은 2011년 4~5월 한국 정부의 비자금이 농협 은행에 차명으로 은닉돼 있다는 미확인 정보를 입수했다. 한·중 무역 사업 경험이 있는 B씨가 대북 연락책 역할을 할 C씨 등 나머지 일당을 모집했다. 이들은 북한 해커들을 동원해 빼낸 정부 비자금을 나눠 갖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2011년 6월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해 중국 단둥의 한 호텔에서 리호남을 처음 만났다. 리호남은 김일성종합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북한 해커 한모(44)씨를 소개했다. 당시 A씨와 한씨는 단둥에서 8일간 농협 관련 200여 개 사이트의 취약점을 분석한 뒤 그중 한 사이트를 통해 농협 내부 전산망을 해킹하기로 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리호남은 해킹을 위해선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A씨에게 “남조선에 들어가 보다 적극적인 자료 제공을 요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2011년 7월 귀국한 A씨는 서울 강남, 인천 등에서 B씨 등과 만나 농협 전산망 IP, 농협에 연결된 국민은행 IP, 국가정보원 IP 등의 기밀 정보를 알아낸 뒤 단둥으로 돌아갔다.

당시 A씨와 한씨는 리호남의 감시하에 보름 내내 중국 단둥, 베이징 등에서 농협 전산망 해킹을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농협 내부 전산망의 방화벽에 막혀 실패로 돌아갔다.

이들의 범행은 당국이 2018년 리호남의 대북 보고문을 확보하면서 꼬리가 잡혔다고 한다. 검경은 4년여간 공조 수사를 벌여 이들을 차례로 검거했다.

앞서 2011년 3월 북한 정찰총국은 디도스(DdoS) 공격으로 농협 전산망을 마비시킨 바 있다. 그 사태는 A씨 일당과 무관하다고 검찰은 밝혔다.